한승수 시집

주로 인터넷 카페와 모바일 시 밴드를 통해 활동하며 SNS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 한 사람인 한승수 작가는 국어교사로 지내다 제주도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뒤늦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은퇴 후, 성남 아파트와 춘천 시골집을 오가며 시를 쓰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일상과 사물에 대해 담담하게 노래한다. 장작을 패보니 알겠다 나무는 내가 쪼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슴 여는 것임을 곧게 잘 생기고 결이 고운 나무들은 굳이 마당쇠가 내려찍지 않아도 결 따라 순순히 향긋한 가슴을 내어주지만 굵은 옹이를 지니고 천성이 뒤틀어진 놈들은 열 번 찍어도 넘어가지 않는다 소통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순한 결을 내어주는 일이리 혹 누군가 다가와 내 마음의 문 두드릴 때 수많은 옹이들을 낡은 훈장처럼 끌어안고 배배 꼬인 마음결로 그의 도끼자루나 부러뜨리지 않았으면 싶다 -소통(疏通) 전문- 나이 칠십에 이르러 첫 시집을 내는 그의 시는 단순한 연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사물에 대한 남다른 시선과 깊이를 지녔다. 우리가 무심코 보고 넘기는 사물들을 깊게 관찰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끄집어내는 그의 시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사물과 우리들은 어떠한 모습으로든 얽혀있다. 그 모습에서 의미를 찾는 그의 시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계란프라이를 하다가
은퇴(隱退)
견고한 사랑
실내 바이크
마음 닦기
격식, 그리고 자존심
손수레를 끌며
빨래
달이 예쁜 저녁
소통(疏通)
손톱을 깎으며
제라늄
사과를 먹다가
아, 어머니
원 샷 러브
화장실의 그녀
종이상자
빈 항아리
화분에는 구멍이 있다
두 손
모기를 위하여
바지랑대
주차장에서
리사이클링
누가?
성의(聖衣)
거미
가위바위보
매미는 왜 저렇게 울까
두꺼비, 다시 만나다
양파를 까다가
밤벌레의 전략
생명
함박눈
바람에 취하다
2월에 내리는 비
봄은 스타다
소문
소나기
끝눈(雪)에게
메뚜기
고추밭에서
깡통
거북이 토끼에게
길고양이에게
나는 성남에 산다
남한산성에서
4월
잡초(雜草)
초파일 즈음
콩알이 깨알에게
허수아비
플라타너스
빅 브라더
갑(甲)질
쓰레기를 위한 변론
용두암 야경
태풍전야(颱風前夜)
제주로의 초대
오늘 같은 저녁에는
아버지의 눈물
억새풀
새벽 어시장
사랑은 전기(電氣)를 타고
귤(橘)
등대
홍합국
고사리를 꺾으며
바다에서 반찬을 건지다
동백(冬柏)

<손톱을 깎으며>를 읽다보면 한승수 시인의 사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과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시의 해설을 쓴 박호영 교수의 말처럼 ‘그는 오랜 삶에서 우러나오는 꾸밈없는 시를 쓴다.’ 동시에 그의 시는 단순히 연륜만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느낄 수 있다.사물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그는 본질을 꿰뚫어볼 뿐만 아니라 그들과 우리가 얽혀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70이 되도록 이루어놓은 것 하나 없는 허망한 삶이지만,열심히 살며 사랑하며 노래했던제 삶의 발자취입니다.-‘시인의 말’ 중에서-자신의 말처럼 사물들이 존재하는 의미와 변화,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들이 지닌 감정을 이끌어내는 그의 시에서는 만물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과 진솔한 삶의 철학이 담겨있다.또한 그들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보고 공감하며 소통하고, 반성하는 그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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