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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독하지만 따뜻한 산문 | 음지 양지 모두 품은 인류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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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마음산책
저자 이마무라 쇼헤이
ISBN 9788960905450 (8960905453)
정가 16,500원
판매가 14,850원(10%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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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독하지만 따뜻한 산문 | 음지 양지 모두 품은 인류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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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영화감독)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두 번 수상한 일본 감독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첫 산문집 과거사 문제와 사회적 반감 때문에 음성적으로 향유되던 일본 대중문화가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받아들여진 건 겨우 1998년 10월, 제1차 일본대중문화개방 조치가 시행되면서부터다. 하지만 이때도 영화, 비디오, 출판물 등에서 부분적인 개방만 허용됐는데, 영화의 경우 한일 공동 제작 영화이거나 세계 4대 영화제 수상작에 한한다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단 네 편의 영화만이 극장에 걸릴 수 있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가게무샤>,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 박철수의 <가족 시네마>, 그리고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 1997년 <우나기>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기 전에도 이마무라 쇼헤이는 1983년 일본판 고려장 이야기인 <나라야마부시코>로 먼저 같은 상을 받고 이미 세계적 거장의 위치에 올라 있었으며,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일본 감독이라는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이런 성취를 이루고도 화려하고 밝은 주목을 누리기는 어색해했다. 대학 시절부터 문학도답지 않게 신주쿠 암시장 등을 돌며 뒷골목 문화를 익히고 비주류인 사람들 속에서 갖은 고생을 한 까닭에 어떤 저항심 내지 반골성을 띠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건달, 창부, 재일조선인, 그 밖에 외면당한 사람들에게 자주 눈길을 쏟았고 대중의 기호에 아랑곳하지 않는 길을 걸었다. 일본 영화계의 스튜디오 시스템에 안주하며 예술적 성취를 이루거나 돈 되는 영화를 만들겠단 일념을 간직하기보다는, 자금을 모으려 집을 저당 잡히고 주변에 아쉬운 소리를 하는 한이 있어도 자신이 해야 할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게 그만의 주제와 영화 기법을 지켜 <복수는 나의 것> 등 지금껏 영감을 주고 인용되는 걸작을 남겼다. 『우나기 선생』은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국내 첫 산문집이다. 그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41편의 산문, 오직 이 책을 위해 사흘 동안 진행된 인터뷰 전편, 그리고 그의 모든 영화를 다룬 상세한 필모그래피로 이루어져 있다. 쇼치쿠 영화사의 조감독으로 입사해 오즈 야스지로 같은 거장 밑에서 일하다 닛카쓰 영화사로 옮겨 감독 데뷔를 하고, 더 자유로운 제작을 위해 ‘이마무라 프로덕션’을 차려 독립하고, 후학을 키우고자 일본영화학교(지금의 일본영화대학)를 세우고 운영하기까지, 배우론, 연출론, 제작론, 교육론을 포함해 영화판에서 그가 겪은 수많은 일화가 한 편 한 편 유머와 우수를 간직한 채 그려다. 나아가 영화 바깥의 이마무라 쇼헤이도 섬세하게 보여주는데, 태평양전쟁 전후의 개인사며 추억,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쑥대밭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관찰과 자신의 별별 생활법 등 따뜻하고 쾌활한 예술가의 일화들이다. 대학 시절 문학을 끼고 살았고 사실을 채집하는 데 능한 감독답게 이마무라 쇼헤이의 글은 문학과 다큐멘터리의 중간에 있어, 자신의 일들을 영화처럼 생생하게 전한다. 탁한 삶을 그리면서도 인간적 정서를 놓지 않았던 그의 영화들처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삶에 열심이었던 현실의 이마무라 쇼헤이를 만날 수 있는 첫 책이다.





목차
신주쿠의 벚꽃은 환상

청춘 기행, 쇼치쿠 조감독 시대 / 요코스카 항구 기행 /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서 / 여자 프로듀서 / 농촌 실습 / 사투리 / 결혼식 / 선생님의 가르침 / 성실한 여배우 / 항구 마을의 낭만 / 그 옛날의 삭막함 / 일본 영화의 발견 / 나의 스승 / 히바리 추도 / 오징어젓 / 유도가의 죽음 / K 군과 하구로도 / 꽃 피는 체리와 기타무라 가즈오 / 신주쿠 유곽터에서 / 노년의 동창회에서 / 쑥대밭의 무덤 / 조숙한 소년 / 가와시마 유조 기념회 / 싱가포르의 왕 씨 / 남태국의 일본인 의사 / 영화인과 빚 / 40대 독신남 두 사람 / 경솔한 강사 / 유객인 명부 / <검은 비> 제작 현장에서 / 말의 문제 / 도시형 전중파 / 요전번 전쟁 / 나라야마부시의 현재 / 자욱한 비합리 / 윗분들의 청소 사업 / A 군의 배구 / 서혜부와 안구 / 올 로케이션 영화의 비애 / 신주쿠 벚꽃 환상 / 여성의 세기

저건 더 이상 방도가 없다

여성의 성 근원에 도사린 것 /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 단역이어도 존재감이 분명해서 말이지 / 가와시마 유조는 압도적으로 훌륭한 감독 / 감정을 조장하는 음악은 필요 없다 / 이 타이틀은 몹시 부끄러웠다 / 내 뜻과 달라서 심통을 내면서 찍었습니다 / 매력 없는 여자를 보면 손해 봤다고 생각한다 / 나한테 문부대신상 같은 걸 줘도 괜찮은가 / 더 모자라고 더 의지가 없는 녀석을 그리고 싶었다 / 한 인간을 철저히 조사해 대본을 만들어본다 / 못난 여자가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 저건 더 이상 방도가 없다 / 연출은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 처음부터 세트를 철거할 생각은 아니었다 / 배우들 모두한테서 무시당했죠 / 요코스카와는 인연이 깊다 / 배우도 아직 기대할 만하다 / 다시 찍고 싶은 작품 중 하나이기는 하다 / 조감독이었을 때부터 올 로케이션으로 찍고 싶었다 / 우라야마 기리오의 죽음으로 돌연 방향 전환 / 컬러는 아무리 해도 색이 경박해진다 / 칸에는 상을 받는 단계까지 있어본 적이 없다 / 땅을 파는 데 신경을 기울였다 / 장어 다음은 잉어가 어떤가 / 이쪽도 늙어빠져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좋지 않은가, 필모그래피

[극장 영화]
도둑맞은 욕정 / 니시긴자 역 앞에서 / 끝없는 욕망 / 니안짱 / 돼지와 군함 / 일본 곤충기 / 붉은 살의 / 인류학 입문 / 인간증발 / 신들의 깊은 욕망 / 호스티스가 말하는 일본 전후사 / 복수는 나의 것 / 좋지 않은가 / 나라야마부시코 / 뚜쟁이 / 검은 비 / 우나기 / 간장 선생 /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텔레비전 기록영화]
미귀환병을 좇아(말레이시아 편·태국 편) / 멀리 가고 싶다─나의 시모키타 / 부부안의 해적 / 가라유키상 / 무호마쓰, 고향으로 돌아가다

[그 밖의 작품]

<붉은 살의> 현장 대본
후기를 대신하여
연보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책속으로
도쿄의 집이 두 번이나 불타서 부모님은 홋카이도 요이치에 계속 피해 있었고, 나는 입학금을 지불하니 벌써 굶주렸다. 그래서 오지중학교의 교사였던 사촌 형에게 부탁해 Y 군이라는 중 2 아이의 가정교사를 하게 됐다. 주 이틀에 월급이 1500엔 정도였던 것 같다. Y 군의 아버지는 작은 공장 주인으로 전쟁 중에는 무기 부품을 제조해서 나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있지만 지금은 별로 좋지 않고, 불그레한 얼굴의 듬직한 인상이지만 심한 공처가인 듯했다. 후처인 부인은 건장하고 알뜰하며 느긋한 분위기로, 저녁밥을 먹지 않고 매일 밤 외박하는 남편 일을 살짝 물었더니 “첩한테 가 있어. 벌써 몇 년이나”라고 태연하게 말하고는 호쾌하게 웃는다. 전 부인의 딸이 한 명 있는데 당시 나보다 한 살 위인 스무 살인가 스물한 살로, 서민가에서 자라 좀 깍쟁이 같은 데가 있고 후처와는 잘 못 지내는 느낌이었다. 몸집이 작고 귀여워서 나는 내심 그 누나와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오지에 부지런히 일하러 다녔다. 물론 Y 군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호되게 시키기도 했다.
-19쪽호객꾼 여러분이 구사하는 슬랭은 이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호객당하는 수병의 눈에는 왕년의 용맹스러움이 없고 풍채도 호객꾼 쪽과 큰 차이 없으며 체격조차 미국의 식량 사정이 나빠진 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안 좋아서 피아의 격차가 줄어든 듯이 보였다. 호객꾼도 한가한 탓인지 몇 사람은 길가에 의자를 꺼내 빨간 연필을 한 손에 들고 경륜 신문을 연구하고 있다. “양키 고 홈” 하는 목소리가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본국 젊은이의 일반적 풍조를 억누를 수 없어서인지 미군은 수병들을 평복으로 거리에 내보내게 되었다. 주름진 셔츠에 장발에 청바지라 군기는 느슨하고, 용돈도 없으니까 히피와 전혀 다르지 않다. 주류점에서 산 맥주를 길가에 주저앉아 돌려 마시며 지나가는 여성을 희롱한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크박스에 100엔짜리 동전 하나 넣고 제멋대로 춤추다 물 한 잔 마시고 바로 돌아간다. 일대일 남자다운 싸움은 안 해도 집단으로 라면 기습 정도는 한다. 영양 만점에 멋지고 돈 많은 양키 지금 어디에.
-23~24쪽그 후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를 9년 만에 하게 되었다. 각본은 언제나처럼 ‘큰일이군’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싫어하던 배우를 마음껏 써보니 배우도 아직 기대할 만하다. 그들이 개개의 배역에 몰입해 있는 것을 보면 그들 개인과 배역 사이에 신을 발견하는 방도도 틀림없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배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남우와 여우는 간단히 성으로 나누지만 양자는 전혀 질이 다르다. 남우는 그대로도 괜찮지만 여우 쪽은 여수(女?, 짐승)라든지 여호(女狐, 여우)라든지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 이성이 아니라 직감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43쪽입학식에서 늘 나는 말한다. “얼마든지 널린 수지 잘 맞는 일을 목표로 삼는 것이 당연한데 일부러 수지가 안 맞는 영화의 세계에 들어온 제군은 일종의 미치광이다.” 신입생들은 “아하하……” 하고 웃는다. 교장은 저렇게 말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영 수지가 안 맞지는 않겠지, 대히트할 영화를 만들어서 수지 잘 맞게 살아가는 일도 꼭 있을 것이다 하고. 크게 버는 영화도, 우두머리는 번다고 해도 아래쪽에서 일하는 치들까지 버는 건 아니다. 졸업생은 대부분이 텔레비전영화의 하청 프로덕션에 가서 월급 없이 한 편에 얼마로 싸구려 노동력으로 일한다. 인망이 있고 세심하고 일 잘한다는 평판을 따내면 차례차례 다양한 일에 끌려간다. 어디서 일하든 당연히 밑바닥이니까 어느 정도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 중 몇 퍼센트가 시나리오를 쓰고, 독립해서 연출할 수 있게 된다. 혹은 카메라맨으로서 독립한다. 스물 무렵에 졸업해서 10년이나 그 정도는 견디는 시절이 되는 것이다. 이 견딤을 얼굴을 찌푸리며 참을 뿐 아니라 9할 괴롭지만 1할 재미있다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48~49쪽당연히 오랫동안 배우 일을 해, 그다지 좋은 배역을 맡는 일도 없는데,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빈틈없이 일하는 타입의 사람도 있다. 에서 오자와 쇼이치의 아내 역할을 어느 배우에게 맡겼다. 눈에 띄지 않는 고지식한 중년 여자다. 이전 <나라야마부시코> 때에도 수수한 조연 역을 맡아 견실한 배우라고 생각한 일이 있다. 현장에서 리허설을 해보니 뭔가 부족하다. 오자와 쇼이치와 기타무라 가즈오 두 사람을 장난기 있게 놀리는 장면으로 그녀가 재미없으면 안 되는 곳이다. 테스트를 거듭해도 재미가 전혀 표현되지 않았다. 절차를 조금 바꾸거나 대사를 살짝 고쳐서 테스트했지만 역시 안 됐다. 움직임도 대사도 표면적으로는 연출의 지시대로가 틀림없기 때문에 이제 와서 할 말도 없고 해서 “하룻밤 생각해 와달라” 말하고 다음 날의 본촬영을 기다렸다. 성실한 노력가니까 열심히 공부해 올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본촬영에서도 아무 진보가 없는 게 구멍은 없지만 생기 있는 재미가 나오지 않아 촬영을 중지하게 되었다. 배역 미스인 것이다. 그녀가 타인을 바보 취급하며 놀리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실생활에서도 성실, 정직, 진지로 통해온 게 틀림없다. 즉, 불량기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나는 안달복달하면서도 그녀의 진지함을 야단칠 수 없었다.
-60쪽제가 쇼치쿠 오후나에 들어갔을 무렵에는 실로 봉건적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오시마 감독도 그렇고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도, ‘도라 씨’의 야마다 요지 감독도, 그럭저럭 세계의 영화제에 나가서 무슨무슨 상을 받든 받지 않든 적어도 뭔가 한마디 하고 오는 건 거의 쇼치쿠 오후나 출신이죠. 이건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 봉건적인, 아무래도 시어머니처럼 들들 볶는 그런 촬영소에 한해서 세계에 간신히 통용되는 영화감독이 나온다는 게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요. 봉건적인 편이 좋은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124쪽이타이이타이병에 얽힌 흑백 회상 신은 촬영을 반나절 만에 끝내지 않으면 안 됐어. 마지막에 찍은 신이에요. 여자아이가 유유히 헤엄쳐나가는 거야. 아무래도 어머니가 그런 신이 있는 걸 각오하고 수영장에 데려가서 연습을 시킨 것 같아. 훌륭한 배영으로 헤엄치는 거예요. 거지반이 물속에 잠긴다고 얘기해뒀지만 억지로 잠기게 할 수도 없어서 난처했지. 이 작품은 닛카쓰가 출품하고 싶다고 해서 칸에도 가져갔지. 상이라도 타면 예상 밖에 성공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똑똑지 못해. 지금 일본의 영화 회사는 시나리오를 읽어도 아무 발상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뿐이야. 하나같이 그래요.
-188쪽배우는 어디선가 정신적인 황폐를 느끼든가 경험하든가 하는 게 상당히 크지. 특출한 데가 없어서는 안 돼요. 나 자신도 더 특출해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지. 가와시마 유조를 동경하고 있었으니까요. 남달리 특출한 사람 밑에서 일하고 있으면 그리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
-195쪽외국을 다닐 때, 무엇을 찍고 싶은가 하는 질문을 받고 얘기를 했더니 원폭 관련 작품을 왜 네가 하느냐라든지 쓸데없는 거 아니냐 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피해자 얼굴 하지 말라는 얘길 듣고 그런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해, 주인공을 중국인으로 해서 원폭을 다루면 어떨까라든지 폭격한 미국인의 딸이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설정은 어떨까 하면서 우왕좌왕했지만 작품으로서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그 결과 이부세 원작으로 하게 됐어요. 지금이라도 괜찮지 않은가,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국의 감독이 원폭에 대해 이야기한들 무슨 이상할 게 있나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262쪽
출판사 서평
관찰자 이마무라 쇼헤이의 인류학 입문
독하고 따뜻한 산문에 담은 인간 군상의 희비극<돼지와 군함>이 끝나자 역시 300-400만 엔쯤 예산이 오버돼 프로듀서는 시말서를 쓰고, 나는 이후 3년 정도 작업 배당을 못 받고, 근소한 계약금을 받기는 했어도 밀려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내와 나이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도카이도의 미시마에 옮겨 가 살았다.
-232쪽이마무라 쇼헤이는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두 영화와 <복수는 나의 것>으로 이름을 크게 떨쳤지만, 그의 극영화들이 되도록 감정을 자제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다큐멘터리, 즉 관찰과 기록에 무척 능한 감독이었다. <돼지와 군함> <일본 곤충기> <인류학 입문> <인간증발> 같은 1960년대의 작품들은 다큐멘터리이거나 혹은 다큐멘터리에 버금가는 조사가 뒷받침된 영화이고, 그 뒤에는 1979년 <복수는 나의 것>을 내기 전까지 11년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극영화를 쉬면서 아예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는 영화 만들기의 재미를 다음의 한마디로 압축한다. “인간이 재미있다.”(「후기를 대신하여」) 본질적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관찰과 고찰에서 그의 예술은 이루어졌다.
이런 면은 그의 산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영화를 만들 때 “감정을 조장하는 음악은 필요 없다” 잘라 말하는데 그의 글도 다르지 않아, 억지스럽게 꾸미기보다는 그저 겪은 일들을 사실 위주로, 과잉된 감정 없이 편안하게 풀어놓는다. 그것도 예술가인 자신의 심미적인 자아를 천착하는 법은 거의 없고, 자신이 직접 겪었던 태평양전쟁 전후의 도쿄라든지 그 쑥대밭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이야기, 전쟁 전의 평온했던 가족 이야기, 대학 시절 신주쿠 암시장을 드나들며 인생 공부를 한 이야기, 일상에서 스치거나 로케이션헌팅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 등이다. 그의 눈은 대부분 타인을 향해 있다. 그에겐 자기 외부의 모든 게 글감이자 영화 소재였다.
그가 타인의 삶, 특히 소외당한 사람들의 삶을 주목하게 된 계기는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의 산문 곳곳에는 태평양전쟁 전후로 크게 달라진 삶이 때로는 자신의 일화로, 때로는 타인의 일화로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본성을 억누르고 사는 범상한 일본인을 주목하는 대신 더없이 솔직한 하층민과 서민을 주목하며, 큰 역사의 이면에서 실핏줄처럼 무시되다가 때로 통증으로 다가오는, 일본 사회의 모순이라 할 삶들을 요리조리 따지고 기억한다. 과한 동정 없이, 하지만 애정은 듬뿍 담아, 산전수전을 겪어본 사람답게 의젓한 웃음을 동반해 쓴 그의 글에서 거장의 배포며 어른의 너그러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많이 조사하느라 너무 나가서 탐정 회사같이 됐어요. 조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호적등본을 떼다놓고 “시나리오네요”라더군요. 호적등본을 보니 굉장히 재미있어요. 어떤 사람의 과거를 조사하려고 호적을 보고, 그 사람이 정착한 발자취를 제1고에서 제2고로 끝도 없이 계속 작업했습니다. 이걸 “호적 놀이”라고 부르고 있죠. 기층 사회를 계속해서 조사해요. <일본 곤충기> 때는 매춘부와 매춘 알선업자의 관계를 취재해서 썼더니 대학 노트 세 권이 됐어요. 듣고 기록하는 취재가 무척 재미있는 거죠. 그런데 이걸 캐스팅해서 영화로 만들려고 하면 전혀 다른 기분이 돼버려요. 이 취재한 것이 영화화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은 합니다만. 줄거리를 쓰지 않아도 제대로 기층사회를 맞닥뜨리니까요.
-231쪽조감독, 감독, 제작자를 거쳐 선생이 되기까지
이마무라 쇼헤이가 영화계에서 살아가는 법쇼와 32년(1957년) 매춘방지법이 성립한 해, 요코스카를 무대로 <돼지와 군함>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 당시 아직 건강했던 오즈 야스지로와 노다 고고 선생이 입을 모아 “그대들 뭘 일부러 좋아서 버러지만 그리나?”라고 말씀하셨지. 그때 결정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버러지만 그린다.’
-218쪽이마무라 쇼헤이는 1951년 와세다대학교 서양사과를 졸업하고 그해 쇼치쿠 영화사 조감독부에 입사했다. 당시는 일본 영화가 막 최전성기로 발돋움하던 때로, 쇼치쿠 영화사는 오즈 야스지로, 가와시마 유조, 시부야 미노루 같은 명감독들을 보유하고 철저한 도제 시스템을 앞세워 영화 부흥에 큰 몫을 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으레 제자가 스승의 그늘 안에 안주하기 쉽지만 이마무라 쇼헤이는 탁월하게 주체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3년 만에 쇼치쿠의 시스템을 벗어나 닛카쓰 영화사에서 자기 영화를 일구어갔으며, 1960년대에는 쇼치쿠 소속인 오시마 나기사 같은 감독들과 일본 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끌었다. 일본의 영화사들이 줄도산한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에도 그는 자기의 작풍을 지키며 끝내 살아남았고 이후의 성과는 알려진 대로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아집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그토록 동경한 구로사와 아키라와 가와시마 유조뿐 아니라 존경과 애증이 공존했던 오즈 야스지로 같은 앞 세대 감독들이 하지 못한 일, 즉 ‘일본영화학교’를 만들어 젊은 영화인을 키우는 일에 자신의 힘과 재산을 모두 털었다. 앞 세대에 대한 반감에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교육은 거칠긴 해도 도제 방식과는 달랐고, 사제의 관계도 경직되었던 옛날과 달랐다. 그의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이 학교도 자기 혁신을 계속해 지금은 ‘일본영화대학’으로 개편되었다. 현재 일본 영화업계 종사자 중 상당수가 이 학교 출신이며, 우리나라와 중국 등 해외에서도 학생이 끊이지 않는다.
『우나기 선생』에는 쇼치쿠 영화사의 조감독으로 시작해 세계적 거장이 되고, 거기서 번 돈으로 다시 비대중적 영화를 만드는 것도 모자라 영화학교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과 티격태격하기까지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빼곡히 담겼다. 일본 영화계 시스템의 부흥과 붕괴를 함께하면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강단을 지킨 감독의 호방한 면면을 만날 수 있다. 일본 영화사史의 굴곡을 지나와 끝까지 거장으로 남은 이마무라 쇼헤이의 낱낱의 삶을 그 자신의 글과 말로 전한다.일본영화학교도 창립 후 얼마 되지 않았고 게다가 이사 측에 의지는 낮으나 투기심은 충분하다는 식의 멤버도 있고 나도 이치만 좇아서, 운영이 뜻대로 안 되는 시기가 있었다. 덤으로 내 조수가 감독 독립하도록 자금 마련도 도와야 해서 엉덩이에 불이 붙은 것 같은 1년이었다. 상층부를 완전히 교체하고 일체의 책임을 혼자서 폼 나게 짊어졌지만 빌딩의 집세도 직원의 급료도 지불할 수 없어서 오랜 지인, 친구에게 기대어 곳곳에 돈을 빌리며 돌아다녔다. (…) 남 탓을 할 수는 없다. 학생들이 적으로 보이는 게 싫어서 죽을 만큼 지쳤지만, 몇 사람인가하고 뜻밖에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선생님, 영화 찍어주세요. 우리가 아르바이트해서 자금을 모을 테니까”라고 말해 “얼마 모이는데?”라고 물으니 “한 사람에 5만 엔씩 30명이라고 치고 150만은 모입니다”라고 말한다. 금액의 적음도 감동적이라 나도 모르게 눈물을 머금은 일도 있다.
-105쪽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우나기 선생
저자 이마무라 쇼헤이
출판사 마음산책
ISBN 9788960905450 (8960905453)
쪽수 424
출간일 2018-09-30
사이즈 146 * 225 * 29 mm /710g
목차 또는 책소개 신주쿠의 벚꽃은 환상

청춘 기행, 쇼치쿠 조감독 시대 / 요코스카 항구 기행 /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서 / 여자 프로듀서 / 농촌 실습 / 사투리 / 결혼식 / 선생님의 가르침 / 성실한 여배우 / 항구 마을의 낭만 / 그 옛날의 삭막함 / 일본 영화의 발견 / 나의 스승 / 히바리 추도 / 오징어젓 / 유도가의 죽음 / K 군과 하구로도 / 꽃 피는 체리와 기타무라 가즈오 / 신주쿠 유곽터에서 / 노년의 동창회에서 / 쑥대밭의 무덤 / 조숙한 소년 / 가와시마 유조 기념회 / 싱가포르의 왕 씨 / 남태국의 일본인 의사 / 영화인과 빚 / 40대 독신남 두 사람 / 경솔한 강사 / 유객인 명부 / <검은 비> 제작 현장에서 / 말의 문제 / 도시형 전중파 / 요전번 전쟁 / 나라야마부시의 현재 / 자욱한 비합리 / 윗분들의 청소 사업 / A 군의 배구 / 서혜부와 안구 / 올 로케이션 영화의 비애 / 신주쿠 벚꽃 환상 / 여성의 세기

저건 더 이상 방도가 없다

여성의 성 근원에 도사린 것 /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 단역이어도 존재감이 분명해서 말이지 / 가와시마 유조는 압도적으로 훌륭한 감독 / 감정을 조장하는 음악은 필요 없다 / 이 타이틀은 몹시 부끄러웠다 / 내 뜻과 달라서 심통을 내면서 찍었습니다 / 매력 없는 여자를 보면 손해 봤다고 생각한다 / 나한테 문부대신상 같은 걸 줘도 괜찮은가 / 더 모자라고 더 의지가 없는 녀석을 그리고 싶었다 / 한 인간을 철저히 조사해 대본을 만들어본다 / 못난 여자가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 저건 더 이상 방도가 없다 / 연출은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 처음부터 세트를 철거할 생각은 아니었다 / 배우들 모두한테서 무시당했죠 / 요코스카와는 인연이 깊다 / 배우도 아직 기대할 만하다 / 다시 찍고 싶은 작품 중 하나이기는 하다 / 조감독이었을 때부터 올 로케이션으로 찍고 싶었다 / 우라야마 기리오의 죽음으로 돌연 방향 전환 / 컬러는 아무리 해도 색이 경박해진다 / 칸에는 상을 받는 단계까지 있어본 적이 없다 / 땅을 파는 데 신경을 기울였다 / 장어 다음은 잉어가 어떤가 / 이쪽도 늙어빠져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좋지 않은가, 필모그래피

[극장 영화]
도둑맞은 욕정 / 니시긴자 역 앞에서 / 끝없는 욕망 / 니안짱 / 돼지와 군함 / 일본 곤충기 / 붉은 살의 / 인류학 입문 / 인간증발 / 신들의 깊은 욕망 / 호스티스가 말하는 일본 전후사 / 복수는 나의 것 / 좋지 않은가 / 나라야마부시코 / 뚜쟁이 / 검은 비 / 우나기 / 간장 선생 /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텔레비전 기록영화]
미귀환병을 좇아(말레이시아 편·태국 편) / 멀리 가고 싶다─나의 시모키타 / 부부안의 해적 / 가라유키상 / 무호마쓰, 고향으로 돌아가다

[그 밖의 작품]

<붉은 살의> 현장 대본
후기를 대신하여
연보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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